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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그 떨림과 여운

너는 내가 왜 좋아?

너는 내가 왜 좋아?

2007년 여름 어느날, 여행 둘째날.

깜깜한 밤 지친 몸을 이끌고 맥주 한캔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해남 땅끝 바닷가에 앉아 별을 바라보던 그때..

 

나는 "정말 좋았어" 라고 회상한다.

 

1. 밤하늘을 수놓은 총총한 별들

1. 한쌍의 매미를 닮은 맴섬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

1. 상다리 휘어질정도로 한상가득 차려진 밥상

1. 부드럽고 따뜻한 바닷물

 

이것들은 각각 한폭의 그림으로 내 머리속에 담겨 있으며

내가 굳이 이 추억들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음에도 

2007년의 그날은 나에게 온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이런 각각의 지각현상들이 갑자기 그때를 추억하는 순간

"좋았다" 란 말로 귀결된다.

 

심지어 "좋은" 것들을 제외하곤 잊어버리려 한다.

 

1. 길을 잘못들어 슬리퍼를 신고 산 정상까지 올라갔던 일

1. 사진찍어 줄 사람이 없어 타이머를 맞춰놓고 찍었던 일

1. 많이 외로웠다는 것

1. 전날 30km이상을 걸어 다리가 아팠던 일

 

실제로는 복잡 미묘한 형상들의 느낌을...

나는 그 추억에 대한 갖가지 인상을 이름짓지 못하여

모든 인상을 묶어 "좋았다" 란 말로 귀결시킨다.

 

나는 "정말 좋았어" 라고 다시 한번 말한다.

 

 

 

"왜 하필 나야?"  "너는 내가 왜 좋아?"

 

"답하기 힘들지만.. 좋아"

너는 나에 대한 인상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내가 너에게 친절했기 때문에?

나의 성격이, 나의 육체가, 나의 마음이?

 

조금 이상하겠지만,

나에 대해 생각하는 너도.

그 과정은 내가 여행에 관한 추억을 떠올리는 과정과 같다.

 

넌 내가 해남의 추억을 "좋았다" 란 말로 귀결시켰듯이

나를 하나의 전체로 인지한다. 나에 대한 인상을 언어로 모두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전체로 묶어 "니가 좋아" 라고 말한다.

 

"좋다" 는 말은 나에 의한 탄생한 말이 아니며(나의 특징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말이다.)

오로지 당신이 "좋은" 나를 선택했다는 것에 대해

자신을 찬미하고, 그 대상에게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당신이 만들어낸 나의 인상일 뿐이다.

결국 내가 아니라 당신의 욕망이 만들어낸 말에 도취된다.

 

동시에 그 말은 텅비어 있으며, "좋다" 란 말은 어떠한 특징도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당신은 내가 "좋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특별히 집착하는 나의 어느 곳을 가리키고 싶지만,

그곳은 가리켜질 수 없고, 무의식에 있고, 알지도 못하며,

설사 안다고 해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그것은  텅빈 언어인 "좋다" 로 귀결되며,

동시에 이 말은 당신 욕망의 모든 것을 대변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이름짓지 못하여 "좋다" 라는 말로 귀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