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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는 것의 스릴

언어의 프레임(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난 분명히 코끼리를 생각하지말라고 적었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 

코가 길고 귀가 큰, 그리고 과자를 코로 받아 먹는 '코끼리'를 떠올리고야 말았다.









  '널 사랑하지 않아. 우리 사랑은 이제 그만 잊어줘'라는 옛 애인의 말은 당신과 가졌던 '사랑'에 대한 포근하고 따뜻함을 회상하게 하며 지나간 '우리 사랑'의 생각에 상대방을 더 힘들게 할 뿐, 변명 또는 위로가 전혀 되지 않는다. 적어도 이별통보에는 '사랑'이란 희망찬(?)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할 바에야 '그냥 니가 싫어졌어'라고 말하라. 상대방에게 조금이나마 생각할 거리를 줄여주는 이별통보가 자신은 나쁜사람으로 남을지라도 남겨지는 이를 위한 마지막 배려임을 기억하자.

  프레임(frame)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즉 우리의 두뇌안에 있는 구조물이다. 그러므로 프레임을 직접 보거나 만질 수는 없다. 그렇지만 언어로 프레임을 추론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 두뇌에서는 그 단어와 결부된 프레임이 작동한다.

  위의 예에서 들었듯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한 화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청자는 이미 '코끼리'라는 단어와 결부된 프레임(동물원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형성된 회색빛에 코가 길고 무거운 동물)을 작동시킨다.

  '나는 바보가 아니야'라는 말은 곧 듣는 사람에게 바보(우둔하고 멍청한..)가 갖는 프레임을 작동시키게 해서 '넌 바보일수도 있다는 말이군'이란 생각을 갖게 한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리처드 닉슨이 TV에 나와서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훗날 이 말이 모두에게 자신을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세탁기에 사람을 넣고 돌리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은 '세탁기에 사람을 넣고 돌리는 상상'을 하게 만들며, 일반인이 보기에 황당한 이 경고문이 때로는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구제금융(bailout)이란 말을 구조금융(rescue)라는 말로 바꿔 부르는 것도 '구제'라는 말이 가진 부정적 프레임(구제가 있는 곳에는 사회적인 피해를 받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다.)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구제금융을 지지하는 사람의 '구제금융이 필요합니다.'라는 말은 제 발등을 찍는 격이다.(미국에는 실제로 언어의 프레임을 연구하는 연구소가 있다. 주로 정치 집단과 관련)

   이처럼 우리가 쉽게 내뱉는 언어는 표면적 의미 외에도 두뇌의 프레임과 연결돼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이점을 악용해 누군가가 우리를 설득하려 들 수도 있다. 결론은 언어 사용(말을 할 때나 들을 때나)은 항상 신중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