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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는 것의 스릴

과연 당신의 삶은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탈을 꿈꾼다. 그것이 직접적인 행동이든, 예술이든, 또는 극단적인 방법(자살, 마약, 살인)이든간에 반복되는 일상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일탈을 꿈꾸게 한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이듯. 비록 그것이 신기루일지라도. 

 
  아쉽지만 내가 오늘 하고 싶은 말은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의 삶은 반복되지 않는다 매일 변한다.'고 말하려 한다. 개인의 삶이 반복되고 지루한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예측불가능하고, 다변적이고 불확실하기까지 하다. 당신은 이 세상에 속해있는 무수히 많은 사람 중 한 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세상의 이런 속성이 곧 당신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다시한번 말한다. 당신의 삶은 반복되지 않는다.

 

  잠시 오늘 나의 하루를 떠올려 보자. 그리고 이번주 당신의 삶과 비교해보자. 자, 당신은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다고 말한다면 당신이 틀렸다.

 

  '매일 8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난 후 토익학원에 들렀다가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컴퓨터하다가 보통 12시가 되면 잡니다. 아, 가끔 학원수업이 없는 날은 친구를 만나기도 해요.'

 

  매일매일이 이렇다면 얼핏 이 사람의 일상은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사람의 일상에는 매일 무수히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불확실함, 세상의 예측불가능함, 타인에 의해서 일어나는 변화다.

 

  이를 위해 계열체와 통합체 개념을 통해 살펴보자. 아바타 만들기를 생각하면 쉽다. 아바타는 기본적인 사람형태는 같지만 개인의 기호에 따라 머리모양부터 옷, 신발까지 무수히 많은 선택과 변형이 가능하다. 이 때 아바타의 기본모습(발가벗은 형태)은 통합체고, 선택되는 머리모양, 옷, 신발 등은 계열체다. 이 개념을 확장하면 우리의 삶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통합체 :

기상 -> 아침식사 -> 학교 -> 학원 or 친구만남 -> 집 -> 취침

                                  

  위에 열거 된 하루 일과의 '통합체'다. 통합체는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위의 하루 일과은 하나의 큰 통합체를 형성한다. 물론 작게 보면 이중 한가지 항목 자체가 통합체가 될 수도 있다. 학교는 그 나름대로 '학교생활'이란 통합체를 형성할 수 있다. (123교시 수업 -> 점심식사 -> 567수업-> 도서관)  

 

  보통 우리들은 이 통합체를 보고 일상이 반복되고 때로는 지루하다고 말한다.

 

하루일과의 통합체를 한 문장으로 표현 :

'일어나서 밥먹고 학교가고 학원갔다 집에 와서 잔다.'

 

학교생활의 통합체를 한 문장으로 표현 :

'학교가서 수업듣고 점심먹고 도서관에 들른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 통합체도 매일 변화한다.

(늦잠 혹은 일찍 일어나거나, 수업에 듣거나, 학원에 안가거나,

밤새 공부를 한다든가.)

 

  하지만 이런것쯤은 차치하더라도 아직 계열체라는 큰 변수가 남아 있다. 계열체는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앞서 설명했듯이 이 선택은 당신의 의지는 세상이 골라 놓은 범위내에서 한정된다. 

 

아래에서 기상이라는 통합체에 선택 가능한 계열체를 살펴보자.

 

 1, 기상

※ 개인의 특성에 따라 24시간 중 언제가 될 수도 있다.자신이 사는 사회환경, 생활습관, 약속 등 무수히 많은 변수을 통해 정해진다. 너무 복잡하다. 그러니 우리는 위의 예를 한정지어서 생각보도록 하자.

   

기상에 대입될 수 있는 계열체는

1. 일찍일어남(수업까지 시간이 넉넉한 경우)

2. 평소처럼 적당한 시간에 일어남

3. 늦잠(수업에 늦게 생겨서 밥도 못먹고 뛰어나옴)

4. 일어나보니 수업이 끝날 시간(마음을 비우고 학원갈 준비를 한다.)

 

  이외에도 수 많은 계열체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이정도만 살펴보자. 그리고 이런 계열체의 선택은 당신의 선택이 아니란걸 알아두자. 이 선택은 세상의 속성 즉, 불확실성, 예측불가능함에 의해서다.  누군가 시계의 알람소리를 3데시벨 작게 만들어서 못깬 것일 수도 있고, 엄마가 아침운동을 가시는 바람에 날 안깨줘준 것일 수도 있다. 설령 제 시간에 일어났다고 해도 전날에 날 피곤하게 하는 과제를 내 준 교수가 없었기 때문이고, 전화해서 귀찮게 구는 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숙면을 취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정했다고 생각한 기상시간도 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 그 누군가의 선택이자 결과이다. 위와 같은 식으로 따져보면

          

2. 아침식사(빵, 굶거나, 따뜻한 국과 밥, 전날 먹다남은 참치캔) 

3. 학교 수업 시간표(내가 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 이 수업을 안 듣거나 못 듣기 때문이다.)

4. 토익학원 결정하기(수업시간, 장소 등)

5. 집에서의 행동(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 독서)

6. 잠자는 시간(슬슬 쓰기 귀찮다..)

 

  나의 선택이라는 것도 결국은 무엇에 의해 이미 선택된 것이다. 나는 세상이 정해준 그 범위안에서 최소한의 선택권을 가질 뿐이다.

  이제는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나의 삶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사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부터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다. 물론 죽음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혹은 누구를 위해 살며, 나란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2부에서 계속...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쓰여진 글입니다.

그냥 재미로 봐주세요.....

 

ps. 왼손으로 턱 괴고 스크롤 내리신 분 추천.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