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느끼는 것의 스릴

인간에게 이성이 있어 얻는 것. 잃는 것.


  고대 철학자들은 인간에게 이성(理性)이 있기 때문에 다른 생명체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행복과 위대함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난 오늘 '다리'(우리집 강아지 이름)를 보면서 이성이 나에게 행복과 위대함만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리고 이성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다리는 장담하는데 설득의 심리학을 읽지도 않았고, 인간관계론도 읽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떻게 설득하면 내가 밥을 주는지도 잘 알고 있고, 어떻게 하면 나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밥을 먹고 있을 때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자신의 삶에 꽤 만족해 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나보다는 덜 골치 아픈 삶을 사는 것 같다. 확실히 다리는 나보다 행복한 것 같다.

 

  삶은 버겁다. 확실히 내 삶은 그렇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봤자 답이 안나오는 것들이다. 오히려 다리처럼 본능에 충실하게 먹는 것 혹은 노는 것을 선택하는게 해결책에 가깝다.

 

  이성이 있어 지식을 쌓고, 내일의 계획을 세우고, 장래희망을 세운들 뭘하나, 지금 당장이 행복하지 않은데 말이다.

오히려 인간이 이성을 얻지 않았다면 누릴 수 있었을지 모르는

본능적인 행복(다리에게서 느껴지는 행복)을 잃게된다면

과연 지식과 계획, 장래희망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울, 변덕, 망설임, 의심, 탐욕,

질투,부러움, 식욕, 거짓말, 불안함.

 

  나는 이성을 얻는 대신 훨씬 더 큰 대가를 지불하고 이런 것들을 샀다.

 

잠잘 때의 행복, 먹을 때의 행복,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의 행복,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의 행복,

산책할때의 행복.

 

  다리는 이성을 포기한 대신 이런 행복을 잔뜩 얻었다.

 

  그렇다고 개가 되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성에만 너무 의지하지 않고싶다. 그리고 큰 대가를 지불하고 산 '이성'인 만큼 올바르게 쓰고싶다.  

 

  내가 보기엔 사소한 모든 것(하지만 다리에겐 최고)에 대해 행복해 하며, 이성을 무기로 자만하지 않겠다. 심지어 소크라테스도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밖에 모른다.'라고 말했다. 항상 자만하지 않고 내가 멍청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겠다.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았는가?

그런 사람보다는 차라리 미친 사람에게 희망을 거는 게 낫다'

- 어느 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