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녀가 가파른 절벽에 걸터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지평선위에 간신히 걸쳐 있는 태양은 모든 바다를 자신과
같은 붉은 색으로 만들며,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한다.
남자가 크게 숨을 내쉬며 말한다.
'요즘은 정말 내가 뭘 하며 사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모를 정도로 그렇게 정신없이 살고 있는 것 같아.'
여자는 굳이 남자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계속 조금씩 지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 태양의 모습이 조금씩 줄어들수록 그 안에는 어둠이 채워진다.
'이 세상이라는 것 결국엔 밝음이든 어둠이든 뭘로든 가득 차있어야 하는구나.'
라고 여자는 생각한다.
남자는 여자의 반응에 신경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간다.
'삶이 행복하다는 것, 사실 우리는 그 단어를
알게되는 순간부터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과연 내가 행복했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을까?'
분명히 있었다.
5살때 동네 아이들과 길거리를 뛰어 놀던 순간.
골목길에 가로등에 불이 하나씩 들어오던 저녁시간,
엄마가 날 부르던 따뜻한 음성
분명히 기억한다. 그때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또 다시 남자가 말을 이어가려던 순간,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던 여자가 그제서야 입을 연다.
'나 사실 행복이란게 뭔지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저 태양과 바다를 보며,
지금은 그냥 마음 한가득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싶어.'
바로 그때, 기분좋은 바람이 한껏 실려와 신선한 바다의 향기를
한껏 뿜어주고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