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느끼는 것의 스릴

죽지마. 자살하지마. 내가 널 보고 있잖아..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날은 이미 밝아있다. 하지만 몇시인지 가늠할 수는 없었다.

창가에 놓아둔 기다란 꽃병이 햇빛을 받아 시간을 나타내고 있다.

'음,, 대략 9시 정도 됐나보군....'

여름의 더위가 마지막 힘을 쏟고 있는 바람에

내 방에는 아직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있다.

아니ㅡ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난다.

오늘따라 너무 조용한 집안이 남자는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강아지를 불러도,


부모님을 불러봐도,


여전히 집안에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는듯하다.

남자는 채념한듯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다.


순간,


남자는 혼자가 아니였다는걸 깨닫는다.


거실에는 그의 부모님도, 강아지도 평소와 똑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그들이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없는 사람인 것 처럼'.

그들에겐 내 모습이 보이지도,

내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것 같다.


그들이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인정해주지 않는 그 순간,

나는 죽은 사람과 같았다. 아니ㅡ 이미 죽어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순간ㅡ 무엇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반사적으로 몸이 일으켜세워지며 남자는 잠에서 깨어났다.


마치, 방의 천장에서 자신의 잠든 모습을 내내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잠든 내 몸으로 빨려들어가 자신의 몸과 그 시선이

빠르게 오버랩되는 것처럼.


그제서야 남자는 꿈이 였다는걸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휴......'


남자는 생각한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느낄 수 있는건,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인식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야,

나의 존재는 비로소 누군가에게 인식이 되고,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기억될때에만

그때야 비로소 내가 존재하는 거야. 그것도 나의 의해서가 아닌

타인에 의해서 느껴지는 감정을 내가 전해받아서 알뿐이라구,,,'



남자는 침대에 앉은채로 생각을 점점 확장해 나가본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왜 자살을 택할까?'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은 이 세상에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보통사람들은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해 못하겠지.'



물론 남자도 평소에 그런 자살소식을 들을때면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오늘 꾼 꿈을 통해 그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사실 오만한 생각일 수 있다.)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은 내가 꾼 악몽처럼,

아무도 자신을 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말을 듣지도 못하는 것처럼


느낄테지, 마치 세상에 자신만 덩그러니 혼자 놓여진 것처럼.

자신이 없어도 사람들은 웃고, 살아가고, 행복할 수 있으니까,

그러는 순간 자신의 존재를 사라지고,


존재가 없는 자아는 삶이 무의미 해지며,

당연히 죽음으로 이어지게 되는거지,

존재가 없는 이들에게 이 순간엔 죽음이란 두려운 절차도


우리가 매일밤 잠에 드는 것과 다르지 않을거야.'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건 우리들이 그들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듣고, 인식하고 있다는걸 보여주기만 하면돼.'


'그러면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느낄테고,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그 자신들이 헤쳐나갈 수 있게 되지.'


'그저 우리는 그들과 눈을 맞추며

끊임없이 바라봐주기만 하면돼.'


한참을 그렇게 생각한 남자는

하품을 하며, 침대에서 내려와 문 손잡이를 잡는다.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여는 순간.


강아지가 펄쩍 뛰어올라 남자의 품에 안긴다.


'그래,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한다.'